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음악 <원스> 속 상징과 내면 심리 읽기/고백/거리감과 긴장/내면 성장

by story득템 2025. 6. 23.

『원스(Once)』는 2007년 개봉한 아일랜드 인디 뮤직 영화로, 저예산으로 만들어졌지만 수많은 관객의 마음을 울리며 세계적인 찬사를 받은 작품입니다. 특히 영화 속 두 인물은 이름조차 명확히 밝혀지지 않으며, 거창한 사건 없이도 음악을 통해 서서히 교감하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가치는 단순한 로맨스를 그리는 데 있지 않습니다. 『원스』는 말 대신 음악과 눈빛, 거리감, 상징적 공간을 통해 감정의 흐름과 인물의 내면 심리를 섬세하게 전달하는 수작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영화를 감상할 때 놓치기 쉬운 상징과 연출 기법, 그리고 인물들의 심리 구조에 초점을 맞춰 깊이 있게 분석해보고자 합니다.

 

원스

1. 음악으로 감정을 말하다: '말 없는 고백'

『원스』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주인공 남자와 여자가 처음으로 함께 연주하는 장면입니다. 노래 'Falling Slowly'는 영화 전체의 정서를 요약하는 대표곡이자, 두 사람 사이 감정의 시작점을 표현하는 비언어적 고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는 대사보다 음악이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합니다. 두 인물은 이전까지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을 뿐이지만, 이 노래를 통해 서로의 상처와 바람, 외로움을 공유합니다.

심리학적으로도 이 장면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음악 심리치료(Music Therapy)'에서는 연주를 통해 정서를 해소하고 자기 인식을 높일 수 있다고 보는데, 이 장면은 실제로 그 기법이 구현된 형태와 유사합니다. 남자의 노래는 이전 연인에 대한 미련을 담고 있고, 여자의 반응은 자신의 현재 상황과 감정을 투사하는 듯 섬세합니다. 이때 음악은 감정을 치유하고, 나누며, 용기 있게 표현하게 만드는 매개체로 작용합니다.

더 나아가, 영화 속 음악들은 단순히 삽입곡이 아닌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내러티브의 구성요소입니다. 각각의 곡은 등장인물의 현재 감정 상태를 반영하며, 그들의 내면 심리가 점차 열려 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두 사람은 말 대신 음악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그렇게 공감이 쌓여갑니다. 『원스』가 가진 독특한 감동의 정체는 바로 이 점—말보다 깊은 감정의 언어로서 음악을 활용한 심리적 교류에 있습니다.

2. 카메라와 시선의 배치: 거리감과 긴장

『원스』는 핸드헬드 카메라와 자연광을 주로 사용하는 다큐멘터리 스타일을 띱니다. 이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최대한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특히 카메라가 인물들을 너무 가까이 들이대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두며 따라가는 방식은, 이들 사이의 심리적 거리감을 은유적으로 표현합니다.

두 인물은 서로에게 끌리면서도 쉽게 다가가지 못합니다. 이 긴장감은 단지 상황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의 내면의 윤리적 갈등과 상처, 그리고 책임감에서 기인합니다. 여자는 가족과 딸을 돌보는 입장이고, 남자는 과거 연인에게 아직도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심리 상태는 물리적으로 다가서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고, 감독은 이를 창문, 문틈, 계단, 거리의 프레임 등을 통해 시각화합니다.

예를 들어, 남자가 여자 집 앞에서 기타를 건네는 장면은 상징적으로 매우 복합적입니다. 그는 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대신 물리적으로 문이라는 경계 너머에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려 합니다. 이는 곧, 자신의 감정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배려이자, 넘을 수 없는 선을 인식하고 있는 인물의 자제심을 보여줍니다.

카메라 역시 그러한 선을 넘지 않습니다. 이 장면에서 클로즈업을 사용하지 않고, 멀리서 인물을 조망함으로써 감정이 폭발하는 대신 눌러진 채 흐르는 독특한 정서를 조성합니다. 이처럼 『원스』는 시선을 통해 감정을 절제하고, 거리감을 통해 긴장을 조성함으로써 감정의 진정성과 심리적 깊이를 동시에 확보하고 있습니다.

3. 현실과 이상 사이: 선택의 상징과 내면 성장

많은 로맨스 영화들은 관계의 완성, 즉 '해피엔딩'을 지향합니다. 하지만 『원스』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음악적으로 깊은 유대를 쌓지만, 끝내 함께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가족 곁으로 돌아가고, 남자는 과거 연인과의 관계를 회복하거나 새로운 미래를 위해 런던으로 떠납니다.

이러한 결말은 단순한 이별이라기보다는 성숙한 선택입니다. 이들이 함께하지 않기로 한 이유는 외부 상황 때문만이 아니라, 각자의 내면이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원스』는 감정의 소유보다는 감정의 해방과 이해를 강조합니다. 사랑을 '가지려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고 기억하는' 방식으로 존재시킵니다.

심리학적으로 이 선택은 자기 성찰의 결과입니다. 남자는 그녀와의 관계를 통해 과거의 미련을 떨쳐낼 수 있었고, 여자는 음악을 통해 자신의 열정을 다시 확인하며 현실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 둘은 단지 서로를 만나서 외로움을 달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을 다시 바라보고 삶을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는 심리적 전환점을 만들어냅니다.

결국 이 영화는 사랑의 완성이 목적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자기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성숙해 가는 내면의 성장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스』는 음악 영화이자 심리 영화이며, 동시에 현대인의 고독과 꿈, 현실 속 선택을 담은 삶의 영화입니다.

『원스』는 적은 예산, 무명 배우, 단순한 설정이라는 요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영화가 된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바로, 이 영화가 관객에게 소리치지 않으면서도 가장 깊은 곳을 울리는 정서적 진실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음악이라는 상징을 통해 감정을 나누고, 카메라와 공간 연출을 통해 내면의 갈등과 거리감을 시각화하며, 마지막에는 말하지 못한 감정마저 관객이 느끼게 만드는 영화. 『원스』는 겉보기에는 작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사랑, 상실, 꿈, 선택의 모든 순간들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꼭 사랑이 이루어져야만 진실된 것이 아니라고. 말보다 감정이 먼저인 순간, 음악보다 진심이 더 큰 메시지를 전하는 순간이 진짜라고. 조용하지만, 그래서 더 오래 남는 영화 『원스』는 현대인에게 자기감정의 거울이 되어주는 작품입니다.